INTERVIEW
원래 분만이 뭔지, 자연 출산이 뭔지 하나도 몰랐어요. 같은 시기에 친한 친구 두명이 임신을 했어요. 두 친구의 서로 다른 출산을 목격하게 되었죠. 먼저 임신한 친구는 사정상 제가 보호자로 가게 되었어요. 여러 산모가 커튼 하나를 두고 누워 있더라고요. 직원들도 바빠서인지 무심해 보였어요. 모든 병원이 다 그렇진 않겠지만, 당시 친구를 볼 때, 마치 혼자 버려져 있는 사람처럼 보였어요. 출산 후에 아기도 엄마 품에 없었고요. 잘은 몰라도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같은 시기에 임신한 두 번째 친구는 자신은 조산사랑 출산을 하고 싶다고 말했었어요. 저는 들어본 적도 없으니 위험하다고 말렸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둘라’라는게 있는데 제가 둘라로 도와주면 좋겠다고, 교육받아보라고 부탁하더라구요.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친구가 도와달라니 얼떨결에 둘라 교육을 듣게 되었고, 그곳이 메디플라워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왕초보 둘이서 가진통에도 곧 낳을 것처럼 진지하게 호흡하고 이완했던 장면이 참 웃겨요. 의지가 정말 강한 친구였어요. 4박 5일의 긴 진통 끝에 이송하기 직전에 극적으로 아기가 태어났어요. 힘들었을 텐데 마지막에 아기를 낳으면서 친구가 계속 웃더라고요. 저는 그 때는 경험도, 요령도 없으니 며칠 밤을 새운게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거든요. 다시는 이 병원에 안 온다고 다짐했죠. 그런데 집에 돌아갔더니 계속 출산이 생각나더라고요? (웃음) 그렇게 둘라의 길이 시작되었어요.
일터 자체가 원동력인 것 같아요. 생명 탄생의 순간에 함께하는 일 이잖아요. 긴긴밤을 새우고 며칠을 고생해도 아기가 탄생하는 건 행복한 순간이니까요.
저는 정말 다양한 직업을 경험해 봤어요. 그런데 일하고 감사하다는 소리를 듣는 직업은 거의 없더라고요. 예전에 외국인에게 집을 렌트해주는 사업을 했었는데, 그 일도 둘라처럼 계속 핸드폰 붙잡고 대기하는데, 대부분 전화해서 욕하거나 싫은 소리만 해요. 아무리 잘해주려고 해도 좋은 소리는 듣기 힘들어요. 둘라는 몸이 힘들어도 수고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누군가가 애쓰는 순간에 함께하고 도움이 될수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직업이에요? 이런 일을 만난게 감사해요.
2011년도쯤 진행이 느린 산모의 출산을 함께 기다린 적이 있어요. 당시 조산사 중에 둘라를 별로 인정하지 않는 분도 많이 계셨어요. 밤 12시가 지나서, 같이 사발면을 먹고 있었는데, 방우리 선생님이 ‘이 산모는 왜 진행이 안 될까요?’하면서 진지하게 고민을 나누더라고요. 당시에는 조산사가 진지하게 산모 고민을 저와 나누는 모습이 새로웠다고 할까요? 좀 다르다고 느꼈어요.
둘라는 보통 일대일로 산모와 계약해요. 자연출산은 아기가 언제 나올지 알 수가 없잖아요. 예정일이 한 달 차이 나는데도 같은 날 나오는 경우도 있고요.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혼자 움직이는 것보다 방향성이 같은 사람들과 팀으로 활동하는게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2013년에 마마둘라팀을 결성했어요.
성향이 다 달라요. 그런데 출산을 둘라가 리드하려고 하는 분들과는 오래 못 가더라고요. 둘라는 무언가 하는 사람이 아니고, 겉으로 드러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출산은 둘라의 것이 아니거든요. 혼자 등산가도 되는데, 짐도 들어주고 물도 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잖아요. 그런데 내가 같이 간다고 해서, 그 사람의 등산을 대신 할 수는 없어요.‘결국 산모님의 두 다리로 가셔야 하고, 다리도 아플 거예요.’ 라고 꼭 산모들에게 말씀드려요.
엄마 같은 존재예요. ‘잘했어, 잘했어’ 지지해주되, 다 해주지는 않아요. 지혜롭게 들어주고, 보살펴주고, 드러나지는 않지만 돌아보면 항상 있는 그런 사람이요. 사실 조산사에게는 그런 걸 기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친절함, 배려 같은건 기본적인 인품이지만, 엄마와 아기의 생명을 맡은 의료인에게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면 안 돼요. 조산사는 의료적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니까요.
둘라는 ‘김치냉장고 같아'라고 설명하기도 해요. 김치냉장고는 없어도 되는데 있으면 너무 좋잖아요.(웃음)
세상에 좋은 출산, 나쁜 출산은 없어요. 둘라는 징검다리의 역할이에요. 산모, 남편, 아기 그리고 의료진이 모두 평안한 출산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둘라는 비의료진으로서 출산을 함께하며, 의료진과의 협의 하에 운동, 자세, 휴식 등의 다양한 제안을 하고 정신적 지지를 하는 출산동반자예요. 현대에는 출산이 적고, 출산의 지혜를 알려줘야 할 부모들도 전적으로 의료 행위에 기대는 출산을 경험하죠. 그래서 다양한 정보를 듣기 힘들고, 조산사와 의료진의 숫자도 줄어들어 출산 내내 누군가 함께하기는 힘든 여건이에요. 특히, 우리나라 분만실에는 조산사 없이 의사와 간호조무사로 이루어진 출산 병원이 대다수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엄마 옆에 있어주는 둘라가 어느 현장에나 필요하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