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자연스럽게 준비되었어요. 2007년부터 외국인 가정출산을 다니다가, 2010년에 메디플라워산부인과(현 호움산부인과)에서 초창기 조산사로 활동했어요. 2012년즈음 조산사로서 독립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 ‘마마스조산원’을 열었고요. 그 시기에 이진미 대표는 ‘마마둘라’라는 둘라팀을 꾸렸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조산사로서, 둘라로서 독립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훈련이 되었어요. 이제 데이터도 쌓였고 훈련된 인원들이 생겨서 더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준비가 된 것 같아요.
조산사 첫 7년은 일반 산부인과에서 조산사로 근무했어요. 처음에는 출산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힘든 과정이 있지만 결과가 아름다웠고, 행복한 작업에 내가 도움이 되는게 좋았어요. 분만전문 대형병원으로 옮기면 더 많은 산모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아 이직했어요. 출산이 궁금하고 더 배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분만 병동에서 일하며 얻은 결론은 ‘나는 이렇게 낳고 싶지 않다’ 였어요. 그걸 깨닫고는 너무 힘들었죠.
그냥 여느 날처럼 일하다가 문득 큰 방에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소리 지르며 진통하는 산모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여러 명의 산모를 한꺼번에 봐야하고, 루틴대로 대했죠. 한 산모에게 ‘속옷 다 벗고 이 옷 입고 저기 누우세요’, 딱딱하게 말을 했는데, 그 분이 수치심을 느끼신 것 같았어요. 그 마음이 갑자기 저에게 전이되었어요. ‘감정을 배제하고 기계처럼 산모를 대하고 있었구나’ 각성이 된거죠. 점점 난 이렇게 낳고 싶지 않은데, 진짜 방법이 없을까? 궁금했고 계속 마음에 질문이 남았어요.
그러던 시기에 메디플라워산부인과의 정환욱 원장님이 히프노버딩 프랙티셔너 과정을 오픈하셔서 교육을 듣게 되었어요. 자연출산을 잘 지지해줄 의사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만나게 된 거예요. 그렇게 원장님과 인연이 이어졌어요. 어느 날 원장님이 전화해서 미군 기지에 외국인 가정출산 왕진가는데 같이 가볼 거냐고 여쭤보셨어요. 그 전화를 받던 지하철이 아직도 기억나요. 바로 가겠다고 했죠. 그렇게 가정출산을 도우러 돌아다니고, 자연스러운 출산을 목도하면서 모든 출산에 약물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걸 깨닫게 되었어요.
마마스조산원을 운영하는 시기에 집에서 딸을 출산했어요. 스스로 출산하면서 이 과정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집에 온 모든 사람이 저와 아기만 바라보는데, 살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주인공인 상황이 있을까? 싶었어요. 말 그대로 사랑과 축복 속에서 아기를 만났어요. 온전히 저희를 기다려주고, 함께 기뻐해 주었거든요.
내가 행복하게 출산하니까 이게 맞다고 확신이 더 들었어요. 출산하는 산모들도 이걸 느꼈으면 해서 더 지지하는 마음으로 돕게 되었죠. 출산을 직접 해보기 전에는 진통하는 엄마들이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컸어요. 힘들어서 어떡하냐는 마음이요. 그런데 오히려 딸을 낳은 후에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출산이 별거 아니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냥 저에게는 평범한 하루 중 엄청나게 특별한 일상이었다고 할까요? 너무 이벤트화할 필요도 없고, 아쉬워하거나 상처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에 삶을 이어 나가는 일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일상을 살다가 집에서 아이를 낳았고, 그다음 날도 똑같이 일상이 이어졌어요. 출산을 도우러 온 조산사, 둘라, 사진 찍어주는 분까지 모두가 저의 동료이자 친구였던 점도 그렇게 느끼게 한 것 같아요. 익숙하고 믿을만한 사람에게 온전히 지지받으면, 출산이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확신을 갖게 된 거예요.
출산할 때마다 느끼는 기쁨으로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조산원을 시작하면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생명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엄마와 아기 모두 건강한 걸 확인할 때까지는 두렵기도 해요. 그런데 아기가 나오고 나면 분위기가 바뀌어요. 그때 산모의 옥시토신 호르몬이 넘치고 그게 저희에게도 느껴지거든요. 그 기쁨을 맛보면 계속할 힘이 생겨요.
박리다매식 출산 문화에서 출산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수 있는 인력이라고 생각해요. 현대 사회에 빨리빨리
문화가 있잖아요. 출산에도 적용되어요. 예정일보다 일찍 출산하도록 (나도 모르게) 강요받고, 진통 과정 또한
빠르게 진행시키는 약물이 투여되어요. 고통은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서, 충분한 설명이나 선택권
없이 약물을 사용하도록 표준화되어있는 것도 큰 문제 같아요.
‘안전’이라는 이유가 붙으니 ‘왜?’라고 질문하기 어려워요. 우리나라는 99%의 대다수가 병원 분만 환경에서
출산하니 분위기가 더더욱 그렇고요.
또, 점점 출산을 많이 하지 않는 사회로 가고 있어요. 산부인과 인력도 점점 줄어들 거예요. 이런 시대일수록
개별적인 임신, 출산 관리가 필요해요. 그에 맞는 적절한 인력이 조산사라고 생각하고요. 엄마 중심으로
제대로 하려면 인력이 많이 드는 일이라 비용이 들지만, 그만큼의 만족스러운 케어를 받으실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
해박한 지식과 경험이 있으면서도 따뜻한 조산사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산모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편안하게
아기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산모가 두려움을 내려놓을 때 출산이 잘 진행되어요. 그럴 수 있도록 안전을
지키고 지지해주는 조산사가 되고 싶어요.
‘구글 서치하지 말고 저희한테 물어보세요.’ 저희가 산모님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에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에게 맞는 정보를 찾기가 어려워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나에게 맞는 의료정보를 계속 물을 수 있다면
더 안정적인 임신기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5년, 10년 후에는 조산사와 출산을 함께하는 일이
당연하다고 느껴지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