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재밌어요. 가정출산이 출산하기 전까지는 훨씬 더 긴장되어요. 출산에 의료 영역이 필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응급 상황을 잘 판단하고, 대처해야 하는 긴장감은 당연히 훨씬 커요.
그런데 출산 후 기쁨도 훨씬 더 깊어요. 가정과의 관계도 다르고요. 가정출산은 말 그대로 집으로 누군가 초대해줘서 가는 거잖아요. 분위기 자체가 달라요. 엄마, 아빠도, 첫째도 손님 맞듯이 대해주세요. 엄마도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다는 만족감, 성취감이 높지만, 조산사로서도 자존감도 엄청 올라가요. 몸은 힘들지만, 힐링이 되어요.
계획하고 온 건 아니에요. 일신기독병원에서 조산사 수련을 받으면서 신앙이 회복되었어요. 근무 인계해 줄 때 무조건 성경 말씀 한 절을 읽고, 기도하고, 인계를 시작해야 했거든요. 그때부터는 그냥 길을 묻고 기도하면서 오다 보니 지금까지 왔어요.
간호사 시절, 저는 산부인과랑 잘 맞을 것 같다고 조산사 트레이닝 1년만 받아보라고 권유받았어요. 관심도 없었고 싫었지만, 그냥 일단 해봤어요. 출산이 진행될 때 엄마가 소리를 막지르잖아요? 아기 태어나면 아기도 계속 빼액 울고요, 그런데 그 소리가 싫지 않더라고요. 남들은 그 소리가 힘들다고 하는데 저는 괜찮으니, ‘이게 나랑 맞나 보다’ 그렇게 느꼈죠. 자연스럽게 시작이 되었어요.
조산사 수료를 받은 일신기독병원은 호주 재단이어서 우리나라 병원에 비해 제한이 적은 편인데도 제한된 게 너무 많았어요. 산모가 편안하고 따뜻한 그런 환경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다가 서울에 르봐이예 분만을 지지하는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어요. 어느 날 셋째 출산을 하는 일본인 산모가 오셨는데 셋째니까 진행이 빨리 되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주치의가 올 때까지 아기가 나오면 안 되니까, 산모에게 일단 참아보라고 하고 의사 콜을 했는데, 산모가 저를 붙잡으면서 ‘너 조산사니?’ 묻는거예요. 그렇다고 하니, ‘나 일본에서 조산사랑 낳았어. 너도 할 수 있어. 그냥 받아!’ 이러더라고요. 애기가 나오니까 그냥 받았죠. 막 밀려내려 오는 아기를 받아서 엄마 옆에 누여주니 의사가 도착했어요. 엄마가 너무 행복해하고 좋아했어요.
‘아 맞다. 나 조산사지, 출산 받을 수 있는 사람이지.’ 이런 감각이 깨어난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조산사가 받아서 미안하다고 할인을 해주더라고요. (웃음) 그즈음에 동료 조산사가 자연주의출산이라는 게 있다고 알려줬어요. 그때는 다른 병원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틈틈이 혼자 공부하고 길이 열리길 기다렸어요. 지인들이 병원에 출산하러 오면 혼자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해봤어요. 굳이 촉진제를 쓰지 않아도 진행이 잘될 것 같으면 의사에게 ‘이 산모는 약물 조금 덜 써보면 어때요?’ 말해보고 기다려주고 하면서요.
분만실 팀장을 하면 좀 더 많은 산모를 편안하게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팀장도 했어요. 아기 낳고 바로 신생아실로 넘겨야 하는데, 캥거루 케어를 1시간씩 무조건 하고 보내게 했어요. 처음엔 욕도 많이 먹었는데, 일단 엄마들이 당연히 너무 좋아하고, 실제로 통계를 냈더니 캥거루케어 하고 보낸 아기들이 열조절도 더 잘되었고요.
그러다가 한 자연주의출산 병원 공고를 보게 되었어요. 그렇게 길을 따라 오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네요. 한 직장에서 고민이 생겨서 기도하면 그 방향으로 계속 길이 열렸던 것 같아요.
맞아요, 혼자 하면 한계가 있어요. 처음 조산사가 있는 자연주의출산 환경에 가니 동료들이 있어서 좋더라고요. 제 성향 자체는 근무에 맞춰 여러 명의 산모를 보는 것보다, 한 명의 산모를 출산 전부터 후까지 맡아서 돕는 걸 좋아해요. 혼자 일 하는 게 편한데, 또 소속감도 중요하거든요. 요즘은 팀이지만 각자이고, 또 개인으로 일하지만, 팀이 있어서 의지가 되어요. 현장에서 땀 흘리는 게 잘 맞는 사람이 있고, 전체적인 관리를 잘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한 팀으로, 각자 잘하는걸 할 수 있는 환경이 좋아요.
워라밸 (work-life balance) 조절이요. 스스로 워라밸 조절이 잘 안돼요. 일이 눈에 보이면 쉬지 못하고 달리는 스타일이에요. 재미있기도 하고요. 저는 저랑 첫째 낳은 가족의 셋째 출산도 같이하고 싶거든요. 그럼 그때는 나이가…(웃음) 장기전을 위해 체력 조절을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병원에 속해 있을 때보다 좋은 건, 일을 그만두지 않고도 휴식기를 보낼 수 있다는 거예요. 의도적으로 저에게 휴식기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여유가 생기니까, 산모분들도 더 편하게 느낀다는 걸 경험 중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 같아요. 산모분들이 단순히 ‘감사해요.’ 가 아니라 ‘선생님, 둘째 때 뵈어요~’하는 인사가 그렇게 좋아요. 큰 축복을 또 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고위험 요소가 있으면 당연히 병원으로 가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건강한 사람들은 위험에 대비를 잘해두고 출산을 얼마든지 축제로 만들 수 있는데, 왜 굳이 안 좋은 소리를 들어가며 고통스럽게만 출산 해야하는지 아쉬워요.
아기를 낳으면서 진정한 의미의 가정이 완성된다고 봐요. 잘 시작하도록 알려주고 옆에서 도와주면, 나중에 이 가족이 힘든 시기도 잘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도와요. 출산 자체가 회복의 시간이 되기도 해요. 첫째 출산 때 경험이 안 좋아서 두려워하다가, 둘째 때 완전히 회복되기도 해요. 사랑의 경험이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어요.
일반 병원에 있던 시절에도 나름 산모들에게 최선을 다했거든요. 그런데 이 환경에 오고 나서 그때 뵈었던 산모님들과 아기에게 용서를 구하게 되더라고요. 그때는 그게 일 잘하는 줄 알고 당연하게 했던, 병원 규칙에 맞춰서 생명의 시간을 조절해줬던 기억들 때문에요.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출산은 인생의 축소판 같아요. 인생도 미리 대비하면 덜 두려운 것처럼, 출산도 잘 준비하면 되죠.
우선 산전진찰을 잘 받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잘 받는다는 건 내 선택을 지지받을 수 있는 곳에서 받으시라는 뜻이에요. 가정출산을 하기로 했다면, 가정출산을 잘 알고 지지해 줄 수 있는 산부인과, 소아과 의사에게 가시면 좋겠어요.
일반 병원에 가서 ‘가정출산해요. 조산사랑 출산했어요.’ 했을 때, 대부분 ‘네? 왜요?’ 이런 시선을 보내요. 그러면 엄마는 확신이 있다가도 ‘내가 뭘 잘못했나?’ 주눅이 들어요.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기에, 상처받고 의심하고 하는 거죠. 옆에서 위로하고 격려해 드리지만, 아무래도 축복받고 기쁘게 보내야 할 때를 힘들게 보내게 되죠.
이 일이 계속 지속되면 좋겠어요. 다음 세대 조산사가 분명 있을거라는 마음이 있어요. 찾기는 어렵지만요.
저는 후배들에게 어떤 개인적인 감정이든, 출산실 문을 들어갈 때는 다 내려놓고 기도하는 마음만 가지고 들어가라고 말해요. 엄마, 아빠는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아기는 다 알거든요. 출산 현장에 있는 사람 마음에 화난 감정이 있으면 실제로 진행이 잘 안 돼요.
그리고 사실 전 예전에 둘라를 질투했어요. 산모들이랑 둘라가 계속 같이 있다 보니 나보다 더 친해 보이고, 애착이 깊어 보이는 거예요. ‘내 산모인데’, ‘내가 더 잘해줬는데’ 이런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둘라없이 출산하고, 혼자 더 잘 도와주려고 애썼죠.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욕심을 냈구나 깨달았어요.
우린 한 가족의 축제에 초대받은 사람들이고, 사실 주인공이 누구랑 친하던 나랑은 상관없잖아요. (웃음) 우리는 축제가 좀 더 기쁘고 안전하게 진행되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고, 맡은 역할은 다르지만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인 거죠.
막연하게는 아프리카에 조산사로 나가고 싶다고 꿈꿔요. 일반 병원에서 자연주의출산 병원으로, 조산원으로, 가정으로… 점점 ‘조산사’로서 훈련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요. 아프리카에는 동료도, 의사도 없을 수 있잖아요. 계속 트레이닝 단계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