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2012년 3월, 메디플라워에서 첫째를 낳았어요. 그때는 자연주의출산이라는 개념도 없었어요. 상처없는 출산을 하고 싶어서 찾다가 메디플라워를 갔고 그때 출산 경험이 너무 좋았거든요.
저는 진통을 오래 하다가 수술을 했어요. 사람들은 고생했다고 안타까워하는데, 실패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저랑 남편은 되게 만족스러웠어요. 존중 받았고, 함께 보낸 진통이 좋았고, 수술 후 회복도 무척 빨랐어요. 수술을 했지만 자연주의출산이었죠. 당시에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이었는데도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어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시 돌아봐도 첫 단추를 잘 끼운 것 같아요.
너무 좋았는데 한편으론 깜깜한 길을 혼자 걷는 느낌이었어요. 끝이 있는 건가? 끝이 어디에 있지?
남편이 있어서 조금은 괜찮았지만, 남편도 처음 가는 길이었으니까요. 누가 옆에서 확신을 가지고 ‘그 길 맞아요, 잘 가고 있어요.’ 확인해주고, 계속 같이 가 줄 사람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았거든요. 그래서 ‘내가 다른 산모들이 가는 길을 그렇게 같이 걸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계획과 다른 길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에요. 저는 경험해야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제 경험이 전부는 아니지만, 제 세 번의 출산이 모두 계획과 달랐기 때문에 산모님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둘째는 브이백(*제왕절개 후 자연출산)을 시도했어요. 다시 수술해도 괜찮지만, 개인적으로 한번은 자연출산을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출산은 상상하던 장면처럼 너무 잘했는데 생각보다 진통이 힘들었어요. 그때 이진미 둘라가 ‘괜찮아,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라고 말해준 게 도움이 됐어요. 첫째랑 같이 출산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웃음) 생각보다 아이에게 진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불편하고, 아이에게 짜증도 냈어요. 기대와 달리 아이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죠.
셋째 때는 마마스조산원에서 출산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인생에서 가장 건강한 시기였어요. 셋째는 웃으면서 낳고 싶었어요. 실제로 진통이 넘길 만 하더라고요. 첫째랑 화해의 대화도 도란도란 주고받고요. ‘그때 엄마가 짜증 내서 미안해’ , ‘엄마 내가 그때 자꾸 귀찮게 해서 미안해’ 하면서요. 출산은 잘했는데, 셋째가 호흡이 빨라서 신생아 중환자실에 가야 했어요. 코로나 시기라 면회도 안 되니까 하염없이 눈물 나더라고요. 그렇게 계획과 다르게 아이와 떨어져 지내면서, 또 덕분에 차분하게 생각 정리하고 회복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다시 한번 ‘계획대로 되는 건 없구나’를 느끼면서, 지나간 산모님들도 생각나고, 건강하게 태어나서 같이 집으로 함께 가는 게 정말 축복이구나를 셋째를 통해 배웠어요.
맞아요, ‘내 출산이 아니다' 내려놓는 과정이 있었거든요. 사람마다 길이 다르잖아요. 사실 둘라도 그 길을 다 몰라요. 같이 걷는 사람들일 뿐이에요. 그래서 리드한다거나, 멘토링 한다거나 하는 말은 잘 안 쓰려고 해요. 병원 규칙을 따라야 할 때도 있고, 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갈 때도 있죠. 둘라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내가 맡은 가족의 선택을 지지해주는 것. 그게 전부 같아요.
저도 제 가정이 있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 있어요. 가족의 이해가 있어야 해요. 대기하는 삶이거든요. 감사하게도 남편과 친정엄마가 많이 도와주세요. 밤에 출산이 진행될 것 같으면,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남편이 안 되면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해요. 그렇게 온 가족이 제가 출산을 무사히 갈 수 있도록 모여서 계획을 세워요. 당시에는 애타는데, 항상 어떻게든 상황이 만들어지더라고요.
아이들도 ‘우리 엄마는 애기 낳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이야~’ 해요. 진통이 아기가 나오기 위해 꼭 필요하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분명 힘든 일이거든요. 그 옆에 누군가 있어 줘야 한다는 걸 아이들도 알아요. 일하면서 돈 벌어서 좋은 것도 있지만, 가족들이 제가 하는 일이 돈 이상의 가치라는 걸 인정해주는 게 큰 힘이 되어요.
‘첫째 딸의 둘라가 되고 싶다.’ 라는 소망이 있었어요. 지금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로 바뀌었지만요. 어쨌든 제 딸들이 출산할 때 이렇게 지지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출산은 원래 그런 거야. 힘들지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이런 수고로 아이를 만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야.’
원래 여성이 가지고 있는 힘을 최대로 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시스템 같아요.
산전부터 조산사, 둘라가 one team이 되어서 한 엄마를 돕거든요. 정보가 너무 넘치는 시대라 오히려 혼란스럽잖아요. 산모가 언제든 궁금한 걸 묻고, 정확하게 대답해주는 전문가랑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엄마들에게 안정감을 주더라고요. 임신 기간을 불안해하지 않고, 잘 준비할 수 있게 되어요. 산전이 편안해서인지, 출산도 더 잘 진행되더라고요.
조산사, 둘라, 아빠, 엄마가 합심해서 진통을 막 이겨내다가, 마침내 아기가 나오고, 엄마가 품에 아이를 안아요. 그때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거든요. 드라마틱하게 공기가 바뀌어요. 엄마와 아기가 마치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가 긴장이 탁 풀어지는 순간이에요. 산전부터 모든 시간이 쌓여서 그 순간을 맞이하는 거거든요. 그때가 가장 기뻐요.
한 지인이 저희 마마티비 유튜브에서 출산 영상을 보고 눈물이 났대요. 그분은 출산 장면이 아니라, ‘이렇게 움직여볼까요?’, ‘잘하고 있어요, 잠시 쉬어도 돼요.’ 엄마가 저희에게 지지받는 모습 때문에요. 사람이 제일 힘든 순간에 옆에 있는 것만으로 응원이 되잖아요. 요즘 저출산인 이유가 출산 경험이 안 좋기 때문이 아닐까요? ‘힘들었는데, 기억이 좋아요.’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세요. 실제로 다산 가정도 많고요. 그럴 때 기쁘고, 그런 출산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해요.